한국건축전기설비기술사회
   
   
 
작성일 : 12-08-02 11:32
약은 왜 식후 30분 후에 먹어야 하는가?
 글쓴이 : 엄금희
조회 : 2,276  
약을 언제, 얼마간의 시간을 두고. 그리고 몇 번에 나눠 먹어야 하는가. 약을 복용할 때 가장 많이 드는 의문이다. 또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경우가 많아 자주 헷갈리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에 대한 열쇠가 바로 계면현상에 있다.

얼마간의 시간간격을 두는가는 약물의 대사에 걸리는 시간에 의해 결정되고, 복용간격이 결정되면 하루에 몇 번 먹는가도 해결된다. 약물의 1회 복용량은 대사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와 하루 몇 번 먹을 것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나머지 약을 언제 먹어야 하는가는 음식이나 약의 흡수가 일어나는 계면인 위장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잘 이해하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열진통제로 유명한 아세트아미노펜을 보자. 이 화합물은 물질 자체만으로는 PH(수소이온농도=산성도)가 9 정도 돼 약한 알칼리성이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 먹는 약은 물에 녹았을 때 PH가 4~6정도 되도록 만들어진다. 약산성 상태에서 흡수가 가장 잘되기 때문이다.

이같이 약의 산성도를 높이는(PH를 낮추는) 이유는 물에 잘 녹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어떠한 약도 일단 물에 잘 녹아야 위장관에서 흡수가 된다. 고체 덩어리 상태로는 점막을 통과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약이 대부분 흡수되는 소장의 환경에 맞추기 위한 것도 있다. 위염이나 위궤양 약처럼 위에서 흡수돼야만 제대로 효과가 나는 약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의 약은 흡수면적이 훨씬 큰 소장에서 흡수된다. 여기서 소장의 환경이 약산성~중성을 띠기 때문에 이곳에서 녹아 흡수되는 약물도 약산성으로 산도를 맞춰야 흡수가 잘 된다는 것이다.

소장에는 간문맥이 연결돼 있어 약은 소장을 통과하자마자 간으로 이동하게 돼 피할 수 없는 화학적인 변화를 거치게 된다. 우리가 먹는 약성분이 그대로 약작용을 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우리가 먹는 약은 흡수율을 높이기 위해 일단 잘 녹을 수 있도록 약물의 화학적 구조를 바꿔 변화시킨 형태로 복용하게 된다. 여기서 위에서 잘 녹을 수 있고 소장에서 흡수가 잘되는 화학적 성질이 약산성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약은 약산성을 띤 물질로 만들어지게 된다.

반대로 알칼리성 약물은 산성조건에선 산-염기 반응이 일어나 이온화되기 때문에 장점막세포막의 인지질을 통과하기 어려워 흡수가 안 된다.

산도를 맞추는 것 외에 염(Salt)상태로 만드는 방법도 약의 흡수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약의 성분을 잘 보면 주석산 염이나 염산염, 말레인산염 같이 대부분 염상태로 조성돼 있다. 염이란 두 물질이 약한 이온결합을 하고 있어 극성용매에 해당하는 물에 잘 녹아 중성물질로 돌아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약의 속성을 종합해서 우리 몸에 적용해보면 약은 원래 식간에 먹는 게 원칙이다. 식간이란 하루 세끼를 기준으로 끼니의 중간을 말한다. 이때가 몸 안의 산도가 정상상태를 유지해 소장의 산도도 약산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보통 '식후 30분'에 약을 먹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식사도중 위장에서 염산이나 펩신같은 강산성물질이 분비돼 산도가 매우 높아지기 때문에 음식이 위장을 벗어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먹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식간에 먹기 위해서는 식사 후 두세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때가 되면 약 먹는 걸 잊어버리기 쉬워 그나마 약 흡수가 잘 될 수 있는 '식후30분 복용'이라는 고육책이 나온 것일 뿐이다. 결론은 보통 약은 식간에 먹되 복용을 잊었을 때는 생각났을 때 바로 그때 먹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여기에 몇 가지 예외가 있다. 당뇨약 같은 경우 인슐린제제는 '식전 30분'에 투여해야 한다. 왜냐하면 식후 20~30분 사이에 혈당이 가장 높게 치솟기 때문에 흡수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해 미리 약을 주사해 혈당을 떨어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혈당이 치솟은 뒤 인슐린을 맞아봐야 '사또행차 뒤 나발 부는 격'이다. 당뇨환자가 인슐린을 맞지 않고 밥을 먹게 되면 혈당이 높아져 체온이 올라가거나 숨이 가빠지고, 끈적거리는 혈액으로 인해 고혈압이나 뇌경색 같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당뇨환자가 뒤늦게 벌어진 상황에 놀라 식사후 한참이 지난 뒤에야 부랴부랴 인슐린을 맞게 되면 이미 어느 정도 당이 떨어진 상태에서 약을 먹게 돼 혈당은 더욱 낮아진다. 이번에는 반대로 혈당이 너무 낮은 저혈당상태에 빠지게 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저혈당이 오면 몸 안에 대사가 중지되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 쇼크가 오게 된다. 따라서 당뇨환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약 먹는 시간을 엄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뇨약 중에도 메트포르민처럼 식사를 하는 도중(식중)에 먹어야 하는 약도 있다. 음식중에서 탄수화물과 함께 흡수돼 소화효소에 의해 포도당으로 변한 혈당을 재빨리 세포내로 흡수시켜야 혈액의 당 농도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메토클로프라마이드같은 위장운동촉진제도 약의 기능상 식전에 먹어야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다.

또 살아있는 유산균제제나 일부 항생제는 반드시 식간에 먹어야 한다. 식후에 먹는 경우 위장의 강한 산성조건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장까지 살아서 갈 수 없거나 흡수율이 낮아 아무런 약효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항생제 중에는 산에 약해 식사 후에 먹게 되면 약이 파괴돼 전혀 약리작용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에 나온 약은 다행히 장용코팅을 하거나 서방캡슐에 싸기 때문에 식후에 먹어도 괜찮은 항생제들이 많이 나와 있다. 따라서 항생제는 반드시 언제 먹을 것인지를 복용 전에 약사에게 물어보아야 하고 복용간격도 잘 지켜야 내성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스테로이드(부신피질호르몬계) 제제나 아스피린 같은 NSAID(비스테로이드 진통소염제)계 약들은 염증반응을 원천봉쇄해 위점막의 재생은 차단하고, 위산분비는 자극하는 두가지 기전에 의해 위 점막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위장약과 함께 복용하거나 식후 바로 먹는 게 좋다. 위염이나 궤양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위점막에 대한 영향외에도 위장의 산도가 비교적 높을 때 먹어야 흡수가 가장 커지는 것도 또 다른 이유로 지적된다. 보통 산성계 약물은 PH 1단위당 10의 배수 단위(지수함수)로 흡수가 커진다는 게 화학분야의 가장 유용한 법칙인 핸더슨-핫셀 정리다.

따라서 이들 약들은 반드시 식사직후에 복용하는 게 식간이나 식전에 먹는 것에 비해 최소한 10배에서 많게는 수백배까지 10의 배수단위로 흡수량에서 차이가 벌어질 수 있다. 약을 가장 적게 먹으면서도 효과는 최대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약은 위장관에서 흡수(Absorption)돼 전신으로 분포(Distribution)되고 간에서 대사(Metabolism)를 거쳐 신장-방광을 통해 배설(Excretion)되는 소위 'ADME과정'을 거친다. 이 가운데 흡수와 배설이 계면현상에 해당한다. 두 가지의 상반된 영역이 중간에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서로 원하는 뭔가를 교환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상호교환이야말로 생명을 이어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다. 삶의 굽이를 돌아보면 고교졸업후 대학에 입학하거나,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거나, 총각 처녀를 마무리하고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등 한 국면에서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는 계면에서의 행보가 다른 어느 때 보다 중요한 것도 그런 이유라 할 수 있다.

삶과 죽음, 차안과 피안, 그리고 남과 북의 분단 같은 세계사의 비극적 사건도 계면현상의 현장이다. 그러한 두가지의 상이한 경계상에서 벌어지는 계면현상의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방안을 찾는 일은 약을 언제 어떻게 먹느냐의 문제와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계면에는 항상 긴장(Tension)이 높다. 물리적으로 설명하면 이쪽과 저쪽의 구성원들이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있을수록 계면에서의 장력이 커진다. '같은 성질을 가진 물질들 끼리 서로 뭉친다'(Likes like Likes)는 게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유상종하기 때문에 모든 액체성 물질은 표면장력을 가진다. 그러한 장력이 크면 클수록 흡수와 배설이란 교환현상은 위축된다. 엔트로피가 낮아 서로 섞이지 않는 것이다.

남과 북도 마찬가지다. 서로 소통하지 않을수록(엔트로피가 낮을수록) 긴장감은 커지고, 긴장이 커지면 그만큼 물질의 교환과 이동이 어려워진다. 약물흡수를 높이기 위해 염을 만들거나 산도를 조절하는 것처럼 그러한 긴장을 낮추기 위해 또 다른 약, 계면활성제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계면활성제는 뭘까? 언젠가 통일이 됐을 때를 가정하여 소통을 활성화하는 계면활성제를 찾는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춘근 12-08-07 10:48
 
잘 읽었습니다.